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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잊어라


정보기술(IT)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 "스마트폰은 잊어라…젊은 개발자가 희망"

1982년 5월은 한국의 정보기술(IT)뿐만 아니라 세계의 IT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다.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와 서울대 컴퓨터가 1200bps의 속도로 연결됐는데, 이는 IP 주소를 할당받아 패킷 방식으로 연결하는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방식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인터넷의 원조인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둘째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나라가 됐다. ‘컴퓨터가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수준이었던 당시의 한국 IT를 단숨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전길남(71) 카이스트 전산학과 명예교수다. 전 교수는 194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일념으로 36세의 나이(1979년)에 귀국했다. 전 교수는 특히 1990에 국내 최초로 전용선에 의한 인터넷 연결을 주도하며 한국에 본격적인 인터넷 세상을 열었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인터넷 관련 표준을 정하는 인터넷 소사이어티(ISOC)는 전 교수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30명의 헌액자 중 아시아인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삼성전자의 부진 등 한국 IT 산업의 위기가 현실화된 것 같습니다.

“한국을 IT 강국이라고 하는데, 미국과 유럽에서도 그렇게 얘기하나요? 다른 나라가 인정해야 진짜죠. 물론 한국이 잘하는 분야도 있지만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나라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어요. 미국 정도가 올라운드 플레이어죠. 인터넷·IT 강국이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다른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스마트폰·인터넷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요.

“20년 전 일본을 보세요. 마쓰시타·소니를 비롯해 5~6개 기업이 세계를 장악했죠. 지금은 다 몰락했어요. 당시 일본의 산업구조에서는 그런 분야가 잘되는 시기였다는 뜻이에요. 삼성과 LG의 스마트폰이 잘나가는데, 지금은 중국에 역전 당했잖아요. 그건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산업구조가 스마트폰에 최적화돼 있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2010년 이후로는 중국의 산업구조가 스마트폰·컴퓨터 같은 IT 산업에 잘 맞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봐요. 샤오미나 화웨이를 하나하나 분석해 봐야 소용없어요. 문제는 구조와 시스템이죠. 앞으로는 스마트폰도 대량생산, 저비용 구조로 갈 수밖에 없어요. 1년에 100만 개가 아니라 억 개 단위로 가는데, 그런 노하우는 중국에만 있어요. 하드웨어를 싸게 만드는 것은 중국을 절대 넘어설 수 없죠. 삼성도 이대로 가다간 소니나 노키아의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그래도 첨단 기술력은 아직 중국에 앞서고 있지 않습니까.

“20~30년 전 PC를 볼까요. 그때는 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의 PC는 그저 생활필수품·소비재(comodity)가 돼 버렸어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중국에서 삼성 스마트폰의 성능과 차이가 없고 가격은 절반인 제품을 내놓았어요. 뭘 살까요. 집에 있는 냉장고를 보세요. 남자들은 그게 삼성 것인지 LG 것인지도 몰라요. 좋은 제품이 나오면 얼마든지 삼성에서 LG로 갈아타잖아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도 그렇게 갈 겁니다. PC의 원조는 IBM이에요. 삼성은 세컨드 그룹으로 진출한 기업이죠. 운영체제(OS)도 구글 것(안드로이드)을 쓰고 있죠. 오리지널리티도 없고 제품에 대한 로열티도 없는데, 어떤 근거로 삼성이 계속 1등을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애플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요.

“애플은 달라요. 일단 특허에서 앞서가잖아요.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 같은 기업은 매년 특허만으로 앉아서 버는 돈이 수조 원이에요. 삼성은 얼마나 벌까요. 무엇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에서 독보적이에요. 저도 몇 년 전에 일본에 있을 때는 아이폰을 썼는데, 사용자 환경(UI)이 정말 뛰어나더군요. 그때만 해도 삼성이나 LG의 UI는 신경질이 날 정도였죠. 그다음 중요한 게 ‘생태계’예요. 아이폰을 맥 컴퓨터에 연결해 충전하면 따로 작업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자료가 백업돼요. 계정을 새로 만들 필요도 없어요. 아이클라우드에서도 바로 연동되죠.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하나만 망가져도 큰일 나잖아요. 애플은 단순히 하이엔드 제품의 생산을 넘어 이들을 활용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또 원래 애플의 취지는 ‘니치마켓’ 공략이에요. 애플은 예나 지금이나 하이엔드 시장 15%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에요.”

한국 IT가 길을 잃은 셈이군요.

“한국의 IT 산업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조건부 예스’라고 하겠어요. 스마트폰 부진이 위기의 진원이 아니란 뜻이에요. IT 자체는 앞으로도 급속하게 성장할 산업이에요.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IoT)을 보세요. 인터넷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연결인데, 현재 30억 명 수준이에요. 사물은 10억 개 정도가 연결돼 있는데, 2030년이면 1000억부터 1조 단위까지 연결된다고 하죠. 앞으로 20~30년, 아니 100년 후까지 매년 20~30%씩 성장할 시장, 너무 괜찮지 않나요? ‘인더스트리얼 인터넷’도 있어요. 사물인터넷과 유사하게 산업 자체를 인터넷화하는 것인데, 미국에서 열을 올리고 있죠. 예를 들어 하이엔드급 자동차는 IT 부문이 차 값의 40%를 차지한다고 해요. 앞으로는 차량과 차량, 차량과 본사, 나아가 기업과 기업의 생산 라인까지 연결될 거예요. 이것 역시 엄청난 시장이죠.”

다른 산업과의 융합이 역시 대세인가 봅니다.

“맞아요. 헬스 케어 시장이 대표적이죠. 고령화 사회에서 유일한 성장 동력은 바로 헬스 케어 분야예요. 이 모두가 IT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병원과 연결된 웨어러블 기기나 아예 컴퓨터를 몸에 이식해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식이죠. 헬스 케어도 하이엔드화돼 매년 수십%씩 성장할 겁니다. 결국 IT와 다른 산업과의 융합이 핵심이에요.”

강단에 선 지 오래인데, 한국 IT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엔지니어들의 수준이 나쁘지 않아요. 넥슨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젊은 개발자들이 5000명이나 몰리더군요. 질문도 열심히 하고 질문의 수준도 높았어요. 그런 열정을 잘 키우고 리드하면 IT는 걱정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제는 그들을 제대로 키워 내느냐 하는 겁니다. 구글과 트위터의 직원 중 백인은 60%, 아시아인은 34%예요. 페이스북은 아시아인이 41%나 되죠. 미국 내 인구 비율로만 보면 아시아인은 전체의 5.6%에 불과해요. 이렇게 따지면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아시아인이 백인보다 4~5배는 많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톱 매니지먼트급으로 가면 백인이 절대 다수예요. 한두 명 있어봐야 중국계·인도계죠. 글로벌 IT 기업의 리더 가운데 한국계가 나와야만 해요. 그래야 그들과 경쟁할 수 있어요.”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정부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몇 년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 구글 CEO 같은 IT 리더들을 백악관에 초대해 만찬을 열었다는 뉴스를 보며 부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저커버그가 넥타이를 맨 모습이 큰 화제였는데, 그것만으로도 페이스북은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둔 셈이죠. 그런데 왜 우리 청와대는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정주 넥슨 대표 같은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을까요. 대접은커녕 온라인 게임을 4대악으로 규정했죠. 온라인 게임 수출액은 지난해 전체 문화 콘텐츠 수출에서 다른 모든 분야를 합친 액수의 10배를 넘어섰어요. 그렇다면 과연 한국 정부의 목표는 IT 살리기일까요, 죽이기일까요. 한국 IT의 리더들을 만나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해요. 결코 어렵지 않아요.”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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